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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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키시는 하나님-비록 망가진 그릇일지라도 (렘 18 : 1~12)

2010년 7월 25일

어떤 사물이나 사항에 대해서 눈에 보이는 현상과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는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현상에 대한 설명은 매우 간단하고 쉬울 수 있지만 현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한 설명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우리 인류는 물질계가 됐건 정신계가 됐건 눈앞에 발견되고 쓰이는 현상을 발견하여 사용하다가 그 의미에 대하여 눈을 뜸으로 말미암아 진일보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역사의 발전을 이루어왔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바람이 분다.’ 이것을 현상적으로 파악하면 ‘시원하다, 혹은 춥다,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연기가 일어난다, 먼지가 난다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좀 더 표현하면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을 의미로 파악하면 이것은 매우 다양할 수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호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여름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할지라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원한 바람 부는 것이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에어컨 파는 사람, 선풍기 장사, 청량음료나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 파도가 일어나서 장사 못하게 되는 보트임대업자, 고기 잡으러가지 못하는 어부 등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시원하고 좋은 여름바람을 좋지 않은 의미로 받아들일 사람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진 현상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민족의 명운이 좌우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개인의 일상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상은 공통적인 면이 강한데 비해서 의미는 매우 다양하고 의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숙한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현상적으로 파악하여 누리다가 어느 날 문득 그것의 의미를 깊이 발견하고 그것을 내 나름대로 더욱더 깊이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성숙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이 내게 어떤 의미로 와 닿을까를 깊이 생각하여 누릴 수 있는 것이 깊은 믿음입니다.
예를 들면 고난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외형적으로는 괴롭고, 힘들고, 어렵고, 또 내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과 사랑과 자비의 기회라고 본다면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것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고통을 통해서 내 지경을 넓혀주시고, 또 고통을 통해서 내게 더 깊은 생각과 묵상을 이루게 하시고,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축복의 수순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의미를 찾아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성숙한 성도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면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오늘 본문을 보면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레위에 진흙을 올려놓고 그 위에 토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면서 손을 감싸 쥠으로 말미암아 그 진흙이 그릇이 됩니다. 즉, 이와 같이 진흙위에 토기장의 손이 얹혀져 있는 것같이 하나님의 손이 우리에게 얹혀져 있다는 거죠. 즉,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이 주권적 섭리를 통해서 마치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릇을 만들다가 그 그릇이 망가졌을 때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주물러서 정성을 다해서 또 다른 그릇을 빚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실망하고 실패하고 깨진 그릇처럼 망가졌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다시 우리를 빚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재창조 재구성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6절'까지는 이와 같은 내용을 말씀하고 있고 '7절'에서 '12절'은 이와 같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민족을 들어 보충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 보다 더 자세히 살펴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진흙이 토기장의 손에 있음같이 하나님은 주권적인 섭리를 가지고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물레위에 진흙을 올려놓고 그 손을 감싸 쥠으로 말미암아 모양을 만들게 되고 결국 그릇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진흙을 어떻게 감싸 쥐느냐에 따라서 곡선의 형태가 결정됩니다. 손을 크게 벌리면 볼륨이 큰 자기가 나올 것이고 손을 좁게 쥐면 호리한 자기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굴곡이 생깁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임, 손 모양, 그 모든 것이 그릇의 크기와 모양과 모든 형체를 결정합니다.
토기장이가 물레위에서 진흙을 얹어놓고 어떻게 까딱이느냐에 따라서 그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손이 우리 위에 얹혀져 있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우리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레미야는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 하는 것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고 오늘 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능히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행하시고 결정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가신다는 주관적인 섭리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인생의 참된 길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차피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가시니 나는 노력할 필요도 없고 수고하고 애쓸 가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안에 놓여져 있다면 우리들이 해야 될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 가실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잘 쥐어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지시고 우리를 빚어 가실 때 하나님의 손에서 튀어나오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그 손에 쥐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인간들은 그 하나님의 손에서 튀어나오려고-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빚는데 그 진흙이 물레위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이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문제란 말이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에덴 낙원의 동산을 만들어 아름다운 축복을 누리게 하셨지만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의 품을 뛰쳐나오고야 말았습니다. 진흙이 마음대로 물레위에서 튀어져 나와서 온 거리를 뒹군다고 아름다운 그릇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진흙은 토기장의 손아래에 놓여져 있을 때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스스로 쥐어져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우리를 맡길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작품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 되고자 해도 내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 가시도록 하나님께 나를 내어드리는 이와 같은 것이 결국 믿음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서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1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맡기고 하나님이 나를 이루어가고자 하는 대로 내가 그 하나님께 나를 맡겨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손이 자기에게 얹혀져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손길이 내게 닿아져 있음을 느끼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게 손대고 있다는 것을 도무지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지금도 유혹을 받으면 쉽게 빠져가고 혼미해집니다. 선을 행하려면 온 몸에 힘이 빠집니다. 내가 원해서 되는 것 하나도 없었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받아서 어떤 일을 이룬 적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습니까?”
성경은 우리들에게 내적인 자각과 외적인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이 우리에게 잇닿아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적인 자각은 이것이지요.
죄를 지으면 숨고 싶고 숨기고 싶고 불안해져요. 아담과 하와의 모습입니다.
죄를 지으면 또 핑계하고 내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마음의 평정을 이루고자 뭔가 자기 나름대로 핑계하고 꺼리를 만들어서 나름대로 마음에 합리화를 이루고 싶어 해요. 가인의 모습입니다.
자책하고 가슴에이는 아픔을 느낍니다.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모습입니다.
‘이런 것 하면 안 돼.’ 하는 양심의 소리를 누가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씀을 우리가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시편 32편 4절'은 말씀합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눌러 내게 잇닿아있으니 내가 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거죠.
‘악을 행할 때 경책하고 선을 행할 때 가슴벅차오르는 마음의 감격이 있는 것.’
바로 우리 마음에 내적인 확신의 상태가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가족, 주변사람들, 환경여건을 놓아서 은혜의 섭리로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지금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극한의 고통 속에 있습니까?
급격한 상황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까?
주변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요구를 촉구하고 있습니까?
사고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외적인 상황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도록 만든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깎고 우리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이 은혜의 원하는 모습대로 다 합당하게 가꾸어가신다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자신 있는 사람도 수없이 실패하다보면 결국은 그는 겸손해집니다. 마음에 모난 부분 깎여지고 겸손한 마음이 됩니다.
용기 없는 사람-주변에서 격려 받고 어떤 사람들이 마음에 용기와 소망을 줄 때 그는 마음속에서 힘을 얻어 다시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주변 환경이나 여건들, 마침내 우리에게 손을 얹은 하나님의 손길이 되어서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만한 사람도 할 수 없어요. 수없이 실패하다보면 결국은 겸손하게 됩니다. 꺾이지 않으면, 깎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꺾고 깎는데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저는 오늘도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들에게 닿아있음을 느끼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그와 같은 영성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대로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물레에서 뛰어나와 마음대로 이리저리 거리를 뒹굴고 계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대로 만들어져가는 하나님의 섭리의 작품이 되어야만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 진흙에 손을 대고 물레를 돌려 그릇을 만들어갈 때 재미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에 손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모양과 볼륨과 곡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하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고난을 주시고 저러한 기쁨 주시고 은혜와 능력가운데 이러저러한 모습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아름다운 하나님의 작품을 만들려는 목적이 있는 겁니다.
토기장이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도 어떤 모습으로든지 우리를 만들려는 목적이 있는 겁니다.
나는 동그란 병을 만들어야지. 날렵한 병을 만들어야지. 호리병을 만들어야지...
토기장이가 결정하듯이 하나님이 의사를 가지고 우리를 결정해 만들어 가십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첫째 아름다움이겠지요.
진흙을 물레위에 올려놓고 그릇을 만들 때 아름다움을 연상할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 아름다움을 이루어갈 겁니다.
고려청자, 이조백자의 아름다움을 우리 알죠?
선의 흐름, 문양의 아름다움, 빛깔의 청초함, 이와 같은 것들이 조합되어 아름다운 자기를 만들어갈 겁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하나님의 작품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준수함, 그리고 인격의 고매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견고함,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사랑과 남을 배려함,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을 조합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창세기 1장 3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들어놓으시고, 인간을 만들어놓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흡족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그것을 기뻐 누리시는 것이죠.
여러분, 처음에 자기를 만들었을 때 그것이 아름답겠습니까?
그것은 흙으로 만들어 놓은 물렁물렁한 것이겠죠.
그늘에 말려요. 무늬를 넣어요. 그리고 유약을 발라요. 불가마에 초벌, 재벌 구워갑니다. 이와 같은 수고를 거쳐 아름다운 자기가 만들어지죠.
아름다움의 대가로 치르는 것은 수고입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것만 가지고는 안돼요. 유용성, 필요성이 있어야 합니다.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꼭 필요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유용성과 필요성이 있어야 되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가 유용하고 필요한 것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능과 능력을 부여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능과 능력을 부여해주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훈련과 연단과 고난이잖아요.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해주시려면, 기능을 부여해주시려면 훈련시켜야 되고, 연단시켜야 되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으로 든든한 능력을 우리에게 비장하게 소유하게 하시는 거죠. 그럼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닥치는 귀찮음, 또는 고통과 어려움, 이것을 그냥 고통과 어려움으로만 느끼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게 능력을 주신다라고 생각하죠.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근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끊임없이 무거운 것을 드는 훈련을 해야 돼요.
고통스러운 거죠.
우리가 속도를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끊임없이 뛰어서 가속도를 붙이는 훈련을 해야 되죠.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능과 능력을 부여해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죠.
우리에게 이해의 지경을 넓혀주신다는 것은 뭐죠?
체험해보지 못했던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겁니다.
이게 뭐죠? 우리에게는 갈등과 고통으로 다가올 겁니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고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곳을 간다는 것은 어려움이에요. 그런데 그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는 점점점 우리의 지경이 넓어지는 거죠.
아마 성가대도 어려운 곡을 부르고 나면 그 노래를 잘 불렀을 뿐 아니라 실력이 늘었을 겁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기능과 능력을 부여하시는 겁니다.
더욱이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견고성이죠.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유용해도 만지면 톡 부서진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니까 어려움이 있는 거죠.
이 견고성을 위해서 연단의 과정을 거치는 거죠. 한 번 굽고, 두 번 굽고, 세벌 굽고. 이와 같은 것을 통해서 물렁한 반죽이 말려지고 구워지고 약을 발라지고 구워지고, 구워지고, 구워지는 과정을 통해서 단단한 그릇이 되는 거죠.
그래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살펴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연단을 주시고 고난을 주시고 아픔을 주시되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그와 같은 지루하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자신 있는 사람이 누구죠?
모든 여건을 갖췄다, 자신 있다, 이런 거 아니죠.
모든 여건보다 더 큰 어려움이 닥쳐오면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굴복당해요.
그런데 더 자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이전에도 전혀 견디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을 극복해냈어.’하는 사람은 자신 있는 겁니다. ‘다음에 내가 견디지 못할 만한 어떤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을 또 격파하고 해결해낼 수 있을 거야.’ 라는 마음의 영적인 자신감이 서기 때문이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여건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해봤던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자신 있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견고성을 부여하는 겁니다.
여러분, 정말 이런 생각해야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인생은 참 너무나 훌륭한 점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마음이 변화되면 그 순간부터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리는 거예요. 이전까지 전혀 체험하지 못했던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린단 말이죠.
여러분, 남자의 손이 더 부드러울까요, 여자의 손이 더 부드러울까요?
아마 여자 분들께서 화장품을 많이 발라서 손이 더 부드러우시겠죠. 그러나 살펴보면 또 여자 분들은 물일을 많이 하니까 손이 더 거칠 수도 있죠?
여러분, 발레리나 강수진씨 아시죠?
전에 발 사진이 나왔는데 여성의 발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투박하고 마디가 굵고 굳은살이 박혔고 뼈까지 휘어서 비정상적인 발의 모습을 사진 찍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또 박지성 축구선수의 발을 보여줬는데 정말 상처투성이고 뼈도 휘고 이런 발이었죠.
많이 부상을 당하니까 그렇게 되겠죠.
세상에 그냥 되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되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대가를 치러야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력의 대가, 수고의 대가, 땀 흘림의 대가, 가슴 아픔의 대가, 우리는 정말 고통과 고뇌의 대가를 치러야 돼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기능과 능력을 부여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그래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실 때 토기장이가 날마다 진흙을 가지고 만들 때 그 손이 성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를 만져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신 하나님, 능력 있는 분이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에요. 우리 때문에 마음 상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어떻게 해서든지 벗어나려고 하잖아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은 뛰쳐나가려고 하잖아요.
오늘도 예레미야가 이스라엘백성에게 이 말씀을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뛰쳐나간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전언하는 거예요.
너희가 이렇게 토기장이가 너희에게 손을 얹어놓고 빚어 가는데도 너희가 이렇게 뛰쳐나가느냐 그러나 하나님께서 망가진 너희도 다시 재창조하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 마음 상심해도 우리에게 벗어나지 않고 우리에게 그 손을 얹으시고 우리를 그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의 돌이키심입니다.
오늘 본문의 최고의 정점입니다.
오늘 '18장 4절'을 보면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의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만들려고 하던 이런 작품이 망가져요. 깨져요. 실패한단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버리지 않고, 미련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것을 다시 빚어서 만드신단 말이죠. 지난번에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정말 실패하지 말아야지 더 정성을 들여서 만들 겁니다.
우리가 실패한 인생, 깨진 인생, 터져버린 인생, 구겨진 인생, 망가진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려져야 될 이와 같은 깨진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이키시면 내가 너희를 다시 만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의 손에서 터져버렸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안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빚어서 뭉쳐서 무엇인가 다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아래에 있다는 것, 토기장의 손안에 진흙으로 놓여져 있다는 것과 같이 버림받지 않습니다.
'시편 69편 8절'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시편 27편 10절'은 더 나아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어도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버려요.
그런데 그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는 지경인데도 버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 하는데 있어서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다는 개념만 확고해도 우리는 어떤 순간이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용기를 얻어야 돼요.
내 인생 끝난 것 같아도, 내 인생 깨진 것 같아도, 내 인생 버림받은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빚어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실망할 수 없어요.
나는 나이가 많아서...
나는 도무지 일어설 여건이 안 돼.
나는 기운이 없어.
나는 어떤 여건도 안 되고 능력도 안 되고 내가 이제까지 평생 살아와서 이룬 결과가 이건데 내가 여기서 뭘 어떻게 더 이룰 수 있다는 거야.
라고 낙심할 것이 아니란 말이죠.
내가 이루지 못해도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이 부분은 꼭 마음에 새겨서 들어야 합니다.
휘어진 나무는 절대 기둥은 못돼요. 그러나 기둥이 되지 못한다고 그래도 그 나무가 꼭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거예요.
여러분, 제가 일물일어설에 대하여 말씀드렸죠.
한 가지 물체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하나예요.
그 수많은 단어 중에 그 하나를 딱 뽑아서 쓸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고 작가겠죠.
여러분, 우리 인생에 내가 꼭 쓸모 있게 맞는 것이 꼭 한 군데 있어요. 하나님이 거기다 우리를 딱 적재적소에 갖다 쓰실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기 원하는 겁니다.
곧은 소나무만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바람무지에 휘어진 소나무도 절벽가운데서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낼 수 있음을 봅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데 안됐어. 내가 원하는 것 되는 것 아무것도 없어. 내 인생은 실패야 라고 말하시면 안돼요.
내 인생은 실패가 아닙니다. 내가 실패입니다. 내가 실패하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십니다. 실패는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실패했는데 내가 실패한 그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승리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고개 못 드는 부끄러움이 있습니까? 그와 유사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은혜죠.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수술의 통증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수술하는 사람의 통증을 알 수 있겠어요?
산고의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산고의 진통을 알 수 있겠습니까?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실패의 쓰라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실험에 떨어져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가슴의 쓰라림을 알겠습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넓어짐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내가 능력이 없어서 처절하게 실패해봐야 정말 능력이 없어 실패한 사람의 가슴 아픔을 알고, 그 사람을 위로하고, 그 사람을 격려하고 세워줄 수 있는 거죠.
우리 인생에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큰 능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실패라는 것까지도 능력에 포함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양의 능력을 주시고 각양의 위로의 마음을 주셔서 고통가운데 우리에게 능력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거죠.
여러분 이런 생각 안 드십니까?
‘아,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
나는 내가 실패해서 자꾸 쫓겨 가고 있는데 생각해보니까 쫓겨 가는 길이 하나님이 은혜의 길로 나를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나를 또 주물러서 만들어서 빚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시겠지!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제가 재창조, 재구성, 이런 얘기 설교 때마다 하잖아요. 저는 요즘 그 내용에 대해서 정말 마음에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정말 우리 인생을 다시 창조해 주시고 우리인생을 다시 구성해 주십시오.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도 부여하시고,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도 부여하시고, 심력이 약하면 심력도 강하게 해주시고, 의지가 약하면 의기도 강하게 해주시고 내가 어떤 것을 파악하는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면 그 부분을 하나님께서 강화시켜서 다시 구성하시고 다시 만들어주시고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이 중에서 실패하여 낙심한 분이 있습니까?
나는 안 돼, 내 인생은 실패야.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가시기 때문이지요.
오늘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너희에게 하나님의 손이 얹혀져 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손이 너희를 만들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깨진 그릇 같을지라도 너희가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시 빚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회복시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내가 실패해도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결국은 이루시는 분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밀려가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는 그릇으로 만들어져 가는 거예요.
지난번에 캄보디아 선교 다녀오면서 느낀 적이 있습니다.
4년이나 늘 가던 길이에요. 큰 대로인데도 불구하고 포장이 안 되어 있어요.
진흙길이다 보니까 늘 또 저희가 가는 때가 우기다보니까 이게 움푹해서 빠지면 그 차빠진 것 꺼내려면 한참씩 걸려요.
그리고 울퉁불퉁하니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빨리 달릴 수도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머무는 곳에서 또 그 사역 터까지 가는데 두 시간씩 걸리는데도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갔더니 외국에서 자본을 도와줘서 거기다 도로포장을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가 보았더니 도로포장을 했어요. 두 시간에 걸려서 가던 곳인데 30분에 갔습니다.
우리도 포장하고 가꾸면 괜찮아집니다.
도로도 포장하고 가꾸면 괜찮아지던데요.
똑같은 길인데 달라지더라고요. 똑같은 길인데 거기다 도로포장 해 놓으니까 2시간에 가던 길을 30분에 가더라고요.
우리인생 하나님이 포장해주시면, 우리 인생 하나님께서 가꾸어주시면, 우리 인생 하나님께서 만져주시면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축호지의 학교를 가보았습니다. 이제 보통 본진이 모이며 거기 한 천오백명 정도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에 진료 및 모든 프로그램 운용을 받습니다. 저녁에 집회까지 받는데 거기 못 오는 더 깊은 지역의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소로를 거쳐서 한참을 가다보면 정말 지구의 땅 끝이 나오죠. 정말 거기는 사람들도 여기보다 덜 살고 또 더 열악한 지역이죠. 학교가 있는데 이 나무-송판 같은 것으로 지었어요. 창문도 제대로 못 만들었는데 비가 오면 컴컴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학교 교실 안이 너무 어두컴컴해요. 그런데 그 어두컴컴한데 저희가 가는 날은 수업을 안 해요. 진료 및 모든 행사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애들이 막 뛰어놀더라고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막 소리 지르면서 재미있게 뛰어노는 것 같아요. 제가 보니까 역시 애들이 행복한 것 같아요. 어른보다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행복할까?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행복하게 할 수 없을까?
거기 가다보면 집이 다 원두막 같아요. 왜냐하면 밑은 우기가 되면 물이 차니까 바닥이 잘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원두막같이 기둥을 세우고 위에다 평상 같은 것을 만들고 풀로 지붕 만들면 그게 집이에요. 그런데 거기 보면 남자들이 할 일이 없어요. 다 낮에도 그냥 있고 또 모임이 있으면 오고 왠지 그런 거죠.
정말 모두가 이렇게 삶에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애들은 재미있는데 과연 쟤네들이 어른이 되어도 재미있을까?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 함께 해야 돼요. 복음이 함께 해야 돼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복음의 터전이 있어야 돼요.
마음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놀라운 역사가 있어야 돼요.
우리 민족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들과 우리가 같은 모습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이 민족에 손을 얹어주시고 이 민족과 함께 할 때 우리 백성이
이와 같이 달라진 거예요. 저는 그 생각을 했어요. 이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음이 함께 하셔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바꾸는 재창조 재구성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요. 하나님의 손이 내 위에 올려져 있다. 부담되고 숨 막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손을 얹어주시는 마음의 감격과 기쁨과 만족감과 평안감과 의지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욱 더 행복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나라와 능력과 그 은총 속에 감격하여 하나님이 만드시는
은혜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손에 나를 쥐어드리고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들어져가는
아름다운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BCYC